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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과 파계승

신평호(농부)

2019년 09월 20일(금) 11:18 [해남신문]

 

ⓒ 해남신문


어느 날 머리를 삭발하고 나타난 청년이 있다면 대부분은 군대에 입소하는 신병의 모습이리라. 감방에 들어갈 때도 역시 강제 삭발이 이루어진다. 모든 차별을 없애고 맡은 의무에 종사하거나 벌을 받는 모습으로 말이다.

아마든 프로든 운동 선수들이 슬럼프가 길어지면 자신들을 다잡으려 할 때에 하는 행동 중의 하나가 삭발이다. 결연히 각오를 다져서 좋은 경기 결과를 이끌겠다는 다짐의 형태이다. 많은 경우 효과를 보기도 하고 팀의 단합도 도모된다고 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투쟁에 나서는 노조나 사회단체 간부들의 삭발도 이와 같다. 일반인들이 출가를 결행할 때 삭발을 하는 불교의식도 있다. 세속의 온갖 욕망을 버리고 회개하는 뜻으로 머리를 깎는 독특한 형태이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 삭발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애초에 한국에서 삭발 의식은 문화 형태로서 나타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삭발이 아닌 머리를 짧게 깎는 것조차 터부시하기도 했다. 그러던 사회에 삭발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다. 천황에게 결연한 각오로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으로 삭발을 진행했다. 군사문화가 사회 곳곳에 침투하여 자리 잡은 것이다.

최근 야당의 대표를 포함하여 소속 의원이나 당원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삭발을 유행처럼 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결의이자 당의 단합을 도모하고자 함이 분명하다. 당의 단합은 그 당 내의 일이니 논할 일은 아니나, 무엇을 이루고자 삭발을 했을까. 야당 대표는 삭발 후 박정희 시대의 업적을 부정하는 자는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법무 장관의 사퇴를 위해서 결연히 투쟁하겠다고 했다.

정치인들 삭발은 일신의 명성 달성과 소속 당의 집권을 위한 것으로 대부분 평가받는다. 공익이 아닌 사익을 위한 삭발이고, 국민의 정치 개혁 희망을 담아 결연하게 투쟁한다는 순수함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달과 권력 쟁취를 위한 정치쑈인 셈이다. 과거를 회개하고 반성하는 모습은 없다. 모든 잘못은 집권당에 있으니 다시 뽑으면 안 된다는 정치적 이득을 노린 행동이다. 장관 사퇴를 구실로 자신들을 정당화하고 재집권하겠다는 야욕인 셈이다. 그들이 이기고자 하는 게임은 권력 게임이고, 그들의 결연한 목표는 자신들의 영달과 재집권을 위한 것이다. 이들의 집권 시기에 각자가 벌였던 악행들에 대한 반성의 모습은 전혀 없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는 "애초부터 잘못된 체제에서는 온전한 삶이란 어렵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서 일당 독재와 군사독재의 체제에 빌붙어서 이 땅의 주류로 자리 잡은 자들이 독재를 미화하고 심지어는 일제를 미화하는 것은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여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기득권층만 유리한 체제를 위하여 나라가 망해도 그들만 좋으면 다 좋다는 태도이다. 구악의 재설계를 위한 쑈는 삭발의 의미를 오용하는 행위다. 구악은 없어져야 할 적폐이다. 이를 그냥 두고는 아무런 개혁도 이룰 수 없고 모두가 공평한 세상을 향한 진전은 조금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장관의 흠결을 빌미로 자신들의 과거 악행을 세탁하려는 꼼수는 헛웃음 나오는 저질 코미디쇼이다.

그들은 결연히 출가한다고 삭발은 하였으나 내려 놓아야 할 세속의 탐욕은 머리 가득 채운 파계승의 모습과 같다. 헌정파계승이라 할까. 보수라고 대접 받는 야은 진정한 보수인가. 권력을 위하여 서슴없이 자행하는 친일 행동 등을 보면 도저히 보수를 대표한다는 당이라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 그것은 보수당이 아니라 일찍이 박근혜 탄핵의 와중에서 같이 해체되었어야 할 민주주의의 장애물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다. 이 기회에 자신들의 악행들을 먼저 삭발했으면 좋겠다. 삭발한 정치 파계승들이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과거사 석고대죄의 뜻으로 말이다.

해남신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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