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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37) 서회(書懷)

내 가슴 속에는 만권쯤의 서책만이 남아있네

2017년 07월 12일(수) 09:37 [시민의소리]

 

ⓒ 시민의소리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시민의소리


성현들은 오늘에 만족하지 않고 내일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면서도 자못 인간들은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알차게 살면서 내일의 꿈을 꾸라고도 가르친다. 이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선현들은 과거의 회상에 많이 젖었고 이런 노래를 주로 불렀다. 사람이 나이 들면 과거지향적인 회상이 젖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긴 회포를 글로 나타내어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書懷(서회) / 태재 유방선

문전골목 우거지고 조각구름 절간 같아

묵은 세월 맺힌 한이 단번에 사라지니

가슴속 만권의 책을 읽던 기억 새로워.

門巷年來草不除 片雲孤木似僧居

문항년래초부제 편운고목사승거

多生結習消磨盡 只有胸中萬卷書

다생결습소마진 지유흉중만권서

내 가슴 속에는 만권쯤의 서책만이 남아있네(書懷)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1388~1443)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여러 해 문전 골목 풀조차 베지를 못했는데 / 조각구름 나무 하나 마치 절간과 비슷하여라 // 오랜 세월 맺힌 마음에 다 녹아서 사라지고 없는데 / 내 가슴 속에는 만권쯤 서책만이 남아있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마음에 쌓인 회포를 쓰다]로 번역된다. 한적한 시골집 풍경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다. 사람이 자주 드나들면 골목길에 풀이라도 자주 베서 우거지지는 않았겠지만, 인적이 드문 집이란 짐작을 하게 한다. 집안에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데, 나무와 벗하고 있고 있는 조각구름만이 있으니 보잘 것 없는 집이란 뜻이겠다.

시인의 성격은 올곧았던 것으로 전해져 많은 세월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여러 해 문전 골목 풀조차 베지를 못했는데 조각구름 나무 하나 마치 절간과 비슷하다고 했다. 유배지 영천의 명승지에 '태재(泰齋)'라는 서재를 짓고 당시에 유배 또는 은둔생활을 하던 이안유-조상치 등 문사들과 학문적인 교분을 맺었던 그런 와중에 썼던 시문이 아닌가 짐작된다.

화자는 주변이 한적하여 오랜 세월 맺힌 마음이 다 녹아 사라지는데 유별 젊은 시절 읽었던 서책만이 가슴 속에 남아있다고 술회한다. 책 속에 묻혀서 독서가 곧 생활이요, 글을 짓는 것이 곧 하루의 일과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권쯤 되는 책이면 상당히 많은 양의 책이란 뜻으로 그 만큼 많은 독서를 했다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문전 골목 풀 못 베어 조각구름 절간 같아, 맺힌 마음 다 녹았고 만권 서책 남아있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작가는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1388~1443)으로 조선 전기의 문인이다. 사암 유숙의 증손, 서흥부원군 유기의 아들이고, 이색의 외손으로 알려진다. 어려서 권근, 변계량에게 배우고 일찍이 문명(文名)이 높았다. 1405년(태종 5)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였으며 저서로는 [태재집]이 전한다.

【한자와 어구】

門巷: 문전 골목. 年來: 어려 해. 草不除: 풀도 베지 않았다. 片雲: 조각구름. 孤木: 외로운 나무. 나무 하나. 似僧居: 절간과 같다. // 多生結習: 오랜 세월 맺힌 마음(직역은 뜻이 조금 다름). 消磨盡: 다 녹아 사라지다. 只有~: 다만 ~이 있다. 胸中: 가슴 속. 萬卷書: 만권 쫌 되는 책.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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